제목 : [총동창산우회] 2006년7월 제78차 정기산행 등록일 : 2006-06-26    조회: 4943
작성자 : 사무국 첨부파일:
마대산 개념도


일 시 : ′06.07.02.(日)

산행지 : 마대산(馬垈山) 1,052m (강원 영월군 하동면, 충북 단양군 영춘면)

모 임 : 모교 정문앞 (오전 7시 정각)

준비물 : 중식,간식,식수(충분히),여벌티셔츠 회비(본인 1.5만 / 가족 1만)

코 스 : 주차장 ~ 김삿갓공원 ~ 폭포 ~ (어둔이계곡) ~ 김삿갓주거터 ~ 삼거리 ~ 정상 ~ 삼거리 ~ 전망대 ~ 처녀봉 ~ 폭포 ~ 주차장 (약 8km / 5HR)

기 타 : 각 기별 대표께서는 6월29일(木)까지 정인재부장님(55회,011-525-7831)에게 참석자 명단 통보 바랍니다. (보험 및 차량 배차 관계)

여름 산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하산하면서 시원하다 못해 차디찬 계곡물에 하루의 피로를 푸는 목간이 최고라 할 수 있읍니다.
이 즐거움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많은 참석 바랍니다.


기타 문의처 : 신대수(70회) 011 - 251 - 9613

특징/볼거리

일명 김삿갓으로 불리우는 난고 김병연의 묘 집터 유적비 등이 산자락에 있는 산이다. 노루목 마을에는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삿갓주점이 있다. 여기서 김삿갓 묘를 지나 오른쪽 능선으로 정상에 올라 김삿갓 집터로 내려온다.

김삿갓 묘 김삿갓이 잠든 영월 와석골…82년발견 살다 보면 한번쯤 "그래, 여기만 살데냐"하는 객기가 오를 때가 있다. 그러나 난고 김병연(1807∼1863)은 객기 정도가 아니라 도저히 세상 한가운데에 살지 못할 사람이었다.

평생 산 하를 떠돌며 시와 술로 숨을 내쉰 그를 사람들은 김삿갓이라 부른다. 김삿갓은 강원도 영월 땅에 잠들어 있다. 생전에 아들에게 "나 죽으 면 여기 묻으라" 유언했던 와석골 노루목 양지바른 곳에.

영월읍 동남쪽 길로 영월화력발전소, 고씨동굴, 와석재 고개를 차례로 지나 옥동초등학교 주석분교 옆 옥동천 계곡길로 걸어 올라가면, 좁고 깊은 계곡이 돌연 펼쳐진다. 와석골 노루목. 지금도 큰길에서 한시간 반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오지다. 사는 사람이래야 7가구에 20 여명. 계곡 물은 그냥 떠 마셔도 되고 개똥벌레가 훨훨 날아다니는 청 정무구한 자연, 푸른 산 위로 하늘만 뵈는 첩첩산중이다.

김삿갓은 자신의 조상과 관련된 일로 이 척박한 땅에 들어와 살다 가 결국 세상을 등졌다. 그는 조부 김익선의 불충을 비웃는 글을 써 과거에 합격했으나, 그 일이 두고두고 가슴에 맺혀 평생 삿갓 쓰고 평생 하늘을 보지 않았다. 주민 신춘선(63)씨는 "요즘같으면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 욕을 하고도 벼슬을 했을 것"이라며 "삿갓 시대 에나 가능한 철학"이라고 말한다.

워낙 세상을 떠돌다보니 그가 묻힌 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82년 향토사학자 박영국씨(작고)가 집요한 추적과 고증 끝에 와석골에서 삿갓 무덤을 찾아냈다. 오직 ′김삿갓 뫼는 양백(태백- 소백)지간, 영월-영춘 어간에 있다′는 고문서 기록 하나에 의지했다고 한다. 와석골은 강원 경상 충청 3도에 걸친 도계 접경지.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바깥 사람들만 몰랐죠." 신씨 말이다. 하기야 삿갓이 이곳으로 이장된게 1백년이 갓 넘었으니 3대만 올라가도 구전으로 전하는 바 적지 않았을 터. 그는 "노루목에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니까 삿갓이 다시 짐을 꾸려 타지로 도망갔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밭 한가운데 초라하게 서 있던 묘는 1989년 정부에서 밭과 앞집 3채를 사들여 터를 재정비했다. "그때 한 6천만원이면 길도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땅 사버리니까 끝이었다"며 그래서 지금도 예산이 없어 진입로 포장이 안돼 있다고 한다.

그래도 묏자리는 삿갓 자신이 반기지 않을 만큼 썩 훌륭하게 정비돼 ′왕릉′ 같다. 묘 옆에는 ′시선 난고 김병연지묘′라는 자연석 비석이 오래지 않은 과거 살았던 방랑 시인 한 사람의 흔적을 알린다. "네 다리 소나무 소반에 죽이 한 그 릇/하늘과 구름이 함께 떠도네/주인장, 제발 무안해하지 마오/나는 물 속 청산을 사랑한다오." 봉분에서는 누군가가 쏟아부은 술 내음이 향기롭다.

김삿갓 집터는 묘에서 왼편으로 2㎞ 위쪽 산행길이다. 가벼운 산 행길. 그 길엔 돌복숭아, 물봉선화, 갈대가 무성하고, 집 마당엔 들풀 들이 가득하다. 옆에는 개울이 흐르고 약초꾼과 화전 해먹던 사람들이 살고 간 흔적이 쌓여 있다. 주춧돌과 기둥 일부를 제외하고는 1백 여년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거쳐간 사람들이 지붕을 얹고 흙을 새로 바르고 외양간을 내 삿갓의 내음은 모두 사라졌다. "여기서 뭘 생각하며 살았누…" 탄식이 절로 난다.

계곡내 모든 ′화살표′들은 삿갓이 사랑했던 민초들이 세웠다. 삐딱하게 세운 화살표, 유성매직으로 쓴 ′김삿갓 유적지′, 없애버렸더니 화가 잇달아 다시 세운 시선 당집 등. 묘소 건너에는 서울사람이 지금 전통찻집을 만들고 있다. 비포장길은 경상도 영주까지 뚫려 있어 아마도 김삿갓이 방랑벽이 도지면 사통팔달 운신하기 쉬웠을 터. 이제 김삿갓묘가 있다는 소문에 한 여름이면 자연과 위대한 시선의 흔적을 밟으려는 외지인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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